토크 - 파이널 판타지 13 에피소드 i (에필로그 번역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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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소설은 파이널판타지 13 인터판에 동봉한 스퀄에닉스가 정식으로 낸 에필로그입니다.
그러므로 엔딩에 대한 어마무시한 네타가 있으니, 파이널 판타지 13을 아직 못 깨신 분은 뒤로 가시길 바랍니다. 참고로 엄청나게 깁니다.
원래는 영어였던것을 번역한것은 저, windyangel, 와 Squall_Rinoa님이 되십니다.
파트 1-6: windyangel:파트 7, 8 그리고 총 수정: Squall_Rinoa님

에피소드 1: 1장
"마치 기적...같아." 라이트닝이 경이에 가득찬 눈으로 코쿤을 올려다 보았다. 그렇네... 바닐라가 현실에 닿기 힘든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코쿤이 떨어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무수한 생명들이 그곳에 있었다.  모두가 마음으로는 알고 있었다. 반드시 구해야 한다는 걸. 순간과 영원의 시간이 흐르고 잠에서 깨어났을 때 바닐라와 팡은 둘다 "이곳"에 있었다.  팔시 아니마의 신전에서 크리스탈이 되었던 때 와는 뭔가가 달랐다. 그때는 모든 것이 잠 들어 있었다. 팔시 아니마 조차 잠 들어 있었다. 꿈도 꿀 수 없는 너무도 깊은 잠이였다. 그런데 지금은 잠을 자고 있는데도 세상을 볼 수 있었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그란-펄스의 세상을 볼 수 있었다. 등료들의 목소리가 똑똑히 들려왔다.
        여러명의 무장한 병사들이 비행선에서 달려 나왔다. 군복이 낯설지가 않다. 아, 그들이로군. PSICOM이라고 했던가? 그들은 더 이상 적이 아니었다. 모두가 코쿤의 시민들을 안전한 장소로 옮기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저들이 시민들에게 총구를 겨눌 일은 다신 없을 것이다. 증거는 없지만 바닐라는 웬지 그런 믿음이 들었다.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소리치는 그들의 목소리에는 거짓이 담겨져 있지 않았기에.
        "다신 만날 수 없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우리도 기적을 일으킬 순 있어요." 호프가 말했다. 슬픈 듯 보였지만 힘과 다짐이 들어있는 말이였다. 그들은 코쿤의 사람들을 구했다, 그러니 또 하나의 기적을 일으킬 수 있을 지도 몰라. 분명히 바닐라와 팡을 구할 수 있을거야.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고마워, 호프. 바닐라가 속삭였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냐. 우린 언제나 너희들을 지켜보고 있을거야. 너희는 보이지 않겠지만 우리는 너희들을 볼 수 있어. 이 크리스탈 타워에서는 그란-펄스가 다 보이니까. 모두 행복해야 해. 부디 사랑하는 이들의 곁을 떠나지 말아 줘.
        바닐라는 동료들이 사랑하는 이들과 재회하는 모습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의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했다. 너무나 평화로운 기분이었다. 이제야 그녀가 준 상처를 되돌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세라와 닷지가 루시가 된 것은 그들의 잘못이었다.
        재회의 기쁨의 눈물이 한 차례 지나갈 무렵 세라는 코쿤을 향해 눈을 돌렸다. 그녀의 눈은 그늘로 가득했다. 오래 전, 세라를 만났을 때도 저랬지. 바닐라가 생각했다. 우리가 한 짓이 다른 이들에게 슬픔만 가져다 주었어. 상관없는 사람들을 말려 들게 했고 그들의 운명을 바꿨어. 그 죄가 너무도 무서웠어. 너무도 무거웠기에 마주할 수가 없었어. 그래서 도망친 거야. 그것이 예전의 내 모습이야.
        세라의 아픔을 난 알아. 지금 코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어. 그리고 바닐라는 기억했다. 그때 보덤의 해변에서 "모두가 있으니까 틀림없이 이겨낼 수 있을거야" 라는 세라의 말을. 그 때의 세라의 눈빛을 기억하고 있었다. 죄의 현실과 후회가 엄습한다 하더라도 세라는 분명 강하게 견뎌낼 것이라는 걸 바닐라는 알았다.
        그리고 곁에 서 있는 스노우를 불렀다. 언제나 세라의 곁에 있어 줘, 바닐라가 말했다. 스노우가 그렇게만 해준다면 세라는 뭐든지 견딜 수 있어. 때론 해맬 수도 있겠지만 분명히 길을 찾게 될 거야. 그리고 스노우라면 "우리는 기적을 일으킬 수 있어! 바닐라와 팡을 구할 방법을 찾아야 해!" 라고 말하겠지만 그러면 안돼. 세라의 곁에 있어야 하니까.
        목소리가 들렸을 리 없다. 그런데도 스노우는 뒤돌아 보았다. 마치 정말로 바닐라의 목소리를 듣기라도 한 것 처럼. 작게 "미안해" 라고 속삭인 듯 보였다.

에피소드 1: 2장
세라를 다시 품에 안았을 때 스노우의 마음은 백지처럼 하얗게 되었다. 마치 모든 기억이 씻겨져 내려가는 것 처럼. 과거도 미래도 생각나지 않았고 오로지 세라가 돌아왔다는 생각 뿐이었다. 머릿속에 다른것이 비집고 들어 올 틈은 없었다. 난 정말 단순하군. 스노우가 생각했다. 받아들이는 것에 한계가 있잖아.
        미안해, 스노우가 말했다. 크리스탈 타워에 잠들어 있는 바닐라와 팡을 향한 속삭임이었다. 그리고 코쿤을 바라보는 세라의 모습을 보며 현실로 돌아왔다. 기억이 홍수처럼 밀려 들어왔다. 아직 구하지 못한 두 사람이 남아 있다. 지금은 정신을 놓고 있을 때가 아냐.
        그는 잠에 빠져 있던 중에 모두가 웃고 있던 미래의 꿈을 보았다. 그리고 분명히 기억 했다. 그 곳에는 바닐라와 팡도 함께 있었다.. 아직 끝이 아니란 얘기다. 이것이 끝일리가 없다.
        "이제 완전히 부서져 버렸네…" 세라의 목소리에 스노우의 정신이 돌아왔다. "난 구원 받았어. 다시 인간이 되어 언니와 스노우를 볼 수 있게 됐어. 하지만..." 코쿤을 바라보던 세라가 말을 이었다. "꼭 내가 할 일이 있을거야. 나만 행복해지는 건 불공평하잖아. 하지만 뭘 어찌 해야 할지..."
        세라의 말이 옳았다. 모두가 집을 잃었다. 이제껏 누려 온 인생의 교의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았다. 구해야 할 사람들은 숫자는 셀 수 없이 많았다. 해야 할 일을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머리가 어지러워질 지경이었다.
        스노우가 할 수 있는 일은 생각을 멈추는 것 뿐이었다. 애초에 그의 두뇌는  생각하기에 그다지 적합하게 만들어지지 않은 것 같다.
        "부서졌다면 새로 만드는 수 밖에 없겠지." 단순한 남자에게서 나온 단순한 대답이었다.
        "새로운 코쿤이라고?" 세라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 아니, 그런게 아니라. 뭔가 코쿤과는 다른 곳이랄까... 그런 곳을 새로 짓는거야. 그란-펄스에 새로운 도시를 함께 건설하자는 거지." 스노우는 그저 아무 말이나 찾아 내뱉으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일단 뱉어내고 보니 그닥 나쁜 생각은 아닌 것 같았다. 아니, 오히려 이것보다 더 좋은 계획은 없는 것 같았다.
        "우리가 집도 짓고 농사도 짓는 거야. 할 수 있어! 이미 보덤에서 해봤잖아. 기억나? 그 때 채소밭도 만들었고… 괴물도 사냥했고..."
        "그냥 새 걸 만들자는 건가? 역시 너 답군." 라이트닝이 코쿤을 올려다 보며 말했다. "그래도 맞는 말 같네. 그냥 새로운 걸 만드는 수 밖에."
        "그래! 이제부터 여기가 우리의 새로운 고향인 거야!"
        "아직 여기 아무것도 없거든." 라이트닝이 웃으며 받아쳤다. 세라가 킥킥대며 웃음을 참았다.
        "…그래. 그란-펄스에서는 모두가 가족이지."
        라이트닝이 스노우를 힐끗 쳐다보며 눈치를 줬다. 기억 나? 라고 말하는 듯했다. 스노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기억하지. 바닐라가 늘 했던 말이잖아.
        "이곳이 우리 고향이야. 늘 우리의 고향이었어." 라이트닝이 타워를 향해 고개를 틀며 미소를 지었다.
        "왜냐하면 이곳은 “그들의” 고향이니까."
        그들과 함께 그란-펄스를 떠돌며 지내던 날들. 작은 희망과 기대를 품고 오르바 마을로 걸어 들어 온 그 날. 그들은 함께 싸우던 동료였고 또 가족이었다. 그때가 그란-펄스가 라이트닝들의 고향이 되는 순간이었다. 지옥도 아니었다. 적들의 땅도 아니었다. 그저 그들의 고향이었다.
        그 때 뒤에서 숨을 고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호프였다. 그 뒤에는 파란색 군복의 병사들이 보였다.
        "아, 저기….저 사람들….기병대 아닌가요." 호프가 속삭이더니 바로 뛰어 나갔다. 당연하게도 일행은 아직 호프 아버지의 생사여부 조차 모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들었던 건 기병대에 의해 구조 되었다는 소식 뿐이였다. 어쩌면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몰라.
        "가 보자." 라이트닝이 호프를 쫓아가며 말했다.
        "친구가 핀치일 때는..." 삿츠가 닷치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아빠, 핀치가 뭐야?"
        "누군가 곤경에 처했다는 뜻이지. 그러고보니 나도 꽤나 오랫동안 핀치였군."
        닷지의 어깨 위에 있던 새끼 쵸코보가 스노우를 향해 고갤 돌리며 휘파람을 불었다. 같이 안 갈거야?.. 라고 묻는 것 처럼.
        스노우는 한번 더 마음으로 바닐라와 팡에게 미안함을 전했다. 반드시 구해줄게. 내가 본 꿈은 환상이 아니였어. 환상으로 만들진 않을거야.
        "우리도 가자."
        "당연히 가야지!" 세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웬지 달라 보였다. 이젠 더 이상 코쿤을 슬픈 눈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스노우는 어깨를 감싸며 다시 한번 세라를 껴안았다.


에피소드 1: 3장
        "실례합니다! 죄송하지만 바톨로뮤 에스트하임이란 남자를 알고 계시나요?" 호프가 파란 군복의 병사를 부르며 소리쳤다. 어쩌면 그들 중 일부는 리그다 부대 소속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가까이 가보니 아는 얼굴은 없었다. 아무래도 그의 부대는 없는 것 같다. "저기....파름포름에서 구출된 건 아는데...혹시 아시는..." 누군가가 호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놀라서 뒤를 돌아보니 이 사람은, 아는 얼굴이 아니였다. 그러나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무사하다. 내가 만나봤어."
        순간 다리가 떨렸다. 긴장이 풀리면서 거의 주저앉을 지경이었다. 예전에는 이렇게 가족을 걱정해 본 적이 없었다. 걱정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보덤이 격리 되었을 때를 생각하면서 뉴스를 여러번 확인했다. 실은 아버지의 작은 소식이라도 듣고 싶어서였다는 걸 그땐 몰랐다.
        "유감이지만 지금 당장 급한 건 난민들의 수송이다. 아버지를 만나려면 꽤 기다려야 할거야."
        "괜찮아요. 일단 무사하신 걸 알았으니까요. 고맙습니다."
        코쿤 내부에 남은 생존자들을 모두 대피 시켜야 했다. 그것은 굉장한 숫자였다. 단순히 대피소로 이동시키는 것도 힘든데 음식과 물까지 보급 해야 했다. 현재로썬 아버지가 무사하다는 걸 알려주는 것 만으로도 병사의 도움은 충분했다.
        그 때 라이트닝이 등을 툭 치며 미소를 지었다. 뒤돌아 보니 삿즈와 스노우가 힘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가 걱정해주고 있었다.
        "코쿤의 피해상황은..." 라이트닝이 묻자 병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삼분의 이가 무사합니다. 그 말은 나머지 삼분의 일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삼분의 일의 사람들과 도시가 희생 되었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쪽은 보덤 근처였습니다만 사상자는 제로에 가깝습니다. 퍼지 정책 덕분이였죠. 모두 이미 그곳에 없었거든요."
        운이 좋은건지 얄궂은건지…호프는 생각했다. 그러나 보덤은 라이트닝과 스노우의 고향이기도 하다. 어떤 심정일까.
        "그래도, 맞는 말 같네. 그냥 새로운 걸 만드는 수 밖에."
        라이트닝의 말이 떠올랐다. 라이트닝은 보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이미 알고 있었던 걸까. 망가진 코쿤의 껍데기를 보고서 나름 마음의 정리를 한 것인지도 모른다.
        "참 이제 곧 피난민 수송선이 도착할텐데," 병사는 목소리를 낮췄다. "어디 다른곳에 가 있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어. 만에 하나라도… 사람들은 아직도..."
        "아직도 우릴 코쿤의 적으로 생각할 지도 모른단 거죠."
        거의 잊고 있었다. 코쿤의 시민들은 그동안의 사건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아직도 그들에게 있어 펄스-파시란 코쿤을 파괴하는 주적이며 루시들은 코쿤의 보금자리를 앗아간 존재일 뿐이었다.
        "그렇지. 만약 눈 앞에 루시가 나타난다면 그들의 대응방법은 하나 뿐이다."
        파름포름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그 때 시민들의 표정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들은 분명한 적의로 응답했다.
        "좋아요. 그렇게 하죠. 지금 소동을 일으키는 건 저희도 원치 않습니다."
        "미안하다. 잠시만 숨어지내면 된다. 사람들에게 진짜 적이 누구였는지 알려준다면 너희들을 다시 믿어줄거야. 그때까지 기다리는 거다."
        과연 그렇게 될까. 호프는 생각했다. 일행의 손에 수 많은 병사들이 목숨을 잃었다. 살아 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나 성부군의 희생이 너무도 컸다. 그들에게도 가족이 있었을 터였다. 결국 파시나 코쿤의 진실 따윈 상관 없는 것이다. 아마 우릴 적으로 생각 하겠지. 그러나 병사들이 호프의 가족에게 한 짓도 잊을 수는 없었다. 저들을 용서할 만한 용기가 있을까, 확신이 서지 않았다. 하지만 도망치진 않을 것이다. 도망칠 수는 없다.
        저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을 것 같다. 루시의 힘을 잃어버리고 다시 인간이 된 지금 무엇을 할 수 있겠나. 그러나 옛날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진 않다.  무력하고 문제로부터 늘 도망칠 궁리만 했었다. 하지만 이젠 가족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가족을 잃었을 때의 심정을 너무도 잘 이해하게 되었다.
        병사는 임무로 복귀하려고 뒤돌아 섰다.
        "저기... 제... 제가 도와드릴건 뭐 없을까요?" 병사를 쫒아가며 호프가 외쳤다.


에피소드 1: 4장
        "저기 그러니까… 조종사 인력은 충분한거요?" 삿츠가 병사에게 물었다. 호프가 도울 일이 없겠느냐고 질문을 던진 순간 그도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지금 피난시킬 사람들이 엉첨난데, 조종사야 하나라도 많으면 좋죠."
        삿츠가 코쿤 쪽을 바라보았다. 인구의 삼분의 일이 줄었다 해도. 코쿤의 모든 사람들을 피난 시키려면 대체 몇 차례나 왕복해야 하는건가.
        "그러니까 제가..."
        "좋아요 그럼. 댁이 조종석에 얌전히 앉아만 있는다면 모두에게 얼굴을 내비칠 걱정은 없을 테니까."
        비행선의 역할은 단순히 코쿤과 그란-펄스만 왕복하는것이 아니었다. 현재 코쿤의 내부 상황은 대형 재해나 마찬가지였다. 빌딩이 무너져서 쌓이고 그 안에는 구출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따라서 이에 최적화 된 소형비행선과 조종사가 필요했다.
        "…사실은 조종사가 턱 없이 부족해요."
        "그래도 성부군이 싸움을 멈추었으니, 인력 보강은 되는군요."
        크리스탈 기둥 밑에서는 파란 군복의 병사들과 성부군이 협력하고 있었다. 필요한 물자를 운반 하며 각자 가능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모두가 코쿤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또 하나의 기적인가...삿츠는 생각했다.
        "면허증은 어디 있죠?"
        "아냐, 조종만 가능하다면 누구라도 상관 없잖아."
        공식적으로는 민간기 조종석에만 앉을 수 있는 삿즈이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군용기를 다룬다며 불법을 운운할 고지식한 녀석은 아무도 없었다.
        "물론이죠....그리고 아들이 하나 있으니 조종석이 넉넉한 녀석이면 좋겠군요.”
        삿츠는 지금 누구에게도 닷지를 맡길 생각이 없다. 모든 게 정상이라면 자신은 일을 하고 닷지도 유치원에 맡기면 되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금은 잠시라도 닷지를 눈에서 떼어놓고 싶지 않았다.
        모든 것의 시작은 그 날 에우리데 협곡에서 였다. 아주 잠시 눈을 뗐을 뿐인데 너무 부주의 했다. 늘 지켜보지 않아도 될 만큼 닷지가 나이를 먹었다고 생각했다. 결과는 끔찍했다. 그 길만큼은 절대 되돌아 갈 생각이 없다.
        "닷지..." 아들을 내려놓고 무릎을 꿇으며 말을 꺼냈다. "이 아빠의 일은 비행기 조종사다. 네 일은 뭐라고 했지?"
        "웅...밥 많이 먹고, 많이 놀고, 낮잠자고, 사고치고, 야단맞고, 미안하다고 하기...."
        매일 아침 출근길에서 늘 같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유치원에 도착하면 항상 '자, 네 직장이 여기있네' 라며 안으로 들여보내곤 했다.
        "맞아,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다를거야."
        "달라?"
        "오늘 닷지의 일은 아빠의 일을 보는 것이란다. 아빠 곁에 앉아서 착한아이로 있어야 돼. 아빠를 위해서 그렇게 할 수 있겠어?"
        닷지의 얼굴이 밝아지며 명랑해졌다. 아빠가 하는일을 그렇게 가까이서 본 적이 없다.
        "저 곳에 들어가면 일어서거나 돌아다녀서는 안돼. 알겠니? 이 일은 가만히 있어야 하는 일이야, 그러니 너도 얌전히 있어야 한다." 그리고는 새끼 쵸코보에게 말했다. "그리고 너도. 나는 건 금지다, 알았지?" 새끼 쵸코보가 알겠다는 듯 대답했다.
        다시 한번 닷지를 꼭 안아 주었다. 곧 있으면 이렇게 안아줄 수도 없을텐데… 아이들은 굉장히 빨리 자란다. 닷지가 호프의 나이가 되기까지 체 십년도 남지 않았다. 모든 순간이 너무도 소중했다.
        그리고 닷지가 어른이 되면, 팡과 바닐라에게 데려가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봐, 아주 잘 자랐잖아. 옛날 일 같은 건 아무것도 아냐. 어렸을 때 루시였던 게 어디가 어때서?' 분명 옛날 일을 회상하며 웃고 떠드는 날이 올 것이다. 그 날이 아무리 먼 미래라고 해도.
        "좋아, 그럼 갈까?" 삿츠가 태양에 빛나는 크리스탈 타워를 올려다 보았다.
두 명의 친구들이 잠 든 곳.
'언젠가는 꼭 만날거야' 그가 속삭였다. 그리고 안내해 주는 병사의 뒤를 따라갔다.


에피소드 1: 5장
        그런 아이를 본 지는 오랜 시간이 흐른듯한 기분이 들었다. 행복하게 웃고 있는 아이. 기분이 이상했다. 코쿤에서 깨어 난 후 보덤이나 에우리데에서 많은 아이들을 보았지만...
        아마도 자신이 변화되어 그렇게 느끼는 것이라고 팡은 생각했다.
        아니면 변화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먼 옛날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인지도 모른다. 그 옛날 오르바에서 웃으며 놀던 아이들을 지켜보는 자신으로.
        아이들은 웃을 때 모두 똑같은 얼굴이다. 코쿤의 아이도, 오르바의 아이도. 신기한 일이다. 당연하지. 바닐라가 웃었다. 코쿤이든 오르바든 아이들은 아이들이니까. 어디에서 살든 상관없는 걸.
        물론 그렇지. 닷지의 웃음을 지켜보던 팡이 대답했다.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을 것 같다. 그 아이는 다시 인간이었다. 더 이상 성부에 속박 된 루시가 아니었다. 루시의 낙인이 닷지의 손등에서 사라진 걸 보고서 어찌나 안심이 되던지.
        "닷지에게 벌어진 일은 너희들 잘못이 아니야. 닷지에게서 눈을 뗀 내 잘못이었어. 그냥 그렇게 생각해."
        삿츠의 그 말을 들었을 때 그녀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 말이 그녀를 구원해주었다.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짐이 아주 조금은 가벼워 진 것 같았다.
        그래도 자신을 자책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를 끌어 들인 것이다. 결코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설사 그 아이가 코쿤의 아이라고 해도… 기억속의 목소리는 끓임없이 그 때의 일을 상기시켰다.
        용서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삿츠가 아닌 닷지가 직접 용서해 주는 것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닷지의 말이 아닌, 미소가 겨우 그녀 자신을 용서 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팡은 용서 받아야 할 또 다른 사람에게 눈을 돌렸다. 세라였다.
        "널 용서하고 안 하고는 세라가 판단할 일이야." 파름포름에 숨어 있을 때 라이트닝이 한 말이였다.
        ....우리를 용서해줄까? 팡은 궁금했다.
        괜찮아, 바닐라가 속삭였다. 세라는 착하고 강해. 꼭 용서해 줄거야.
        그럼.....우리의 일은 끝난건가. 바보같은 사명도 완수했고, 코쿤도 파괴 해버렸고. 루시들도 모두 원상태로 돌아왔고.
        하지만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앞으로도 계속 코쿤을 짊어지고 있어야 한다. 사실 팡에게 있어 그건 일도 아니였다. 그저 깊은 잠에 빠져서 길고 긴 시간을 허비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것만도 충분했다. 바닐라가 곁에 있고 시해로 변할까봐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저 그렇게 둘이 영원히 시간을 허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때 누군가가 바라보며 미소짓는 느낌이 들었다.
        누구?
        팡이 돌아보는 것과 동시에 바닐라가 외쳤다. 이 느낌을 알 것 같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느낌. 어쩌면 잃어버린 기억의 어딘가에 남아있는지도 모를….
        바닐라가 여신의 이름을 속삭였다. 바닐라는 모든 기억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미소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아아, 그렇구나. 이제 모든 걸 알겠어. 이게 기적이란 거구나. 얽혀져 있던 고리가 단번에 풀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기억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머리속의 안개가 걷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팡은 동료들을 하나 하나씩 바라 보았다. 삿츠는 닷지를 키우느라 바쁘겠지. 호프는 아직 어리고. 하지만 스노우와 라이트닝은....조금 문제가 되겠군.
        우리 구할 생각 따위 하기만 해 봐라. 우릴 돌려받을 생각은 말고 자신만을 생각하며 살아. 아니면… 알지?
        바닐라가 키득거리며 말했다.
        저 두 사람 성격 잘 알잖아... 팡이 한숨을 쉬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에피소드 1: 6장
‘구출하려 들지 말고 우릴 그냥 놔 둬,’ 소리치는 팡의 형체가 보이는 듯 했다. 라이트닝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너희들 놔두고 떠날 우리들이 아니란 거 알잖아.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서로가 알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오랜 시간을 함께 싸워 온 그들이였다. ‘모두들 구하고 싶어 할 걸,’ 라이트닝은 확신 했다.
그러나 이미 크리스탈이 되어 버린 루시에게 생명을 불어 넣는다는 건 인간의 힘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더군다나 코쿤을 지탱 하는 저 기둥을 부수어 버린다면…
크리스탈 기둥을 건드리지 않은 체 저들을 구할 방법은 없는 걸까. 코쿤에 상처를 주지 않고 기둥을 부수는 것이 가능할까. 그러나 어떤 쪽이든 간에 인간의 기술로 감당하기에는 무리다.
그래서 답을 찾아 나서야만 한다.
그란-펄스의 어딘가에 열쇠가 되는 능력이 잠들어 있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어딘가에 단서가 기록되어 있을 지도 모른다.
그들이 처음 그란-펄스로 왔을 때도 루시의 낙인을 없앨 방법을 찾아 다녔다. 그러나 결국 빈 손으로 코쿤으로 돌아갔다.
        그란-펄스에는 아직 그들이 보지 못했고 가지 못한 장소가 많이 남아 있다. 어쩌면 그 중 한 곳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한가지 걸리는 것은 그녀가 더 이상 루시가 아니기에 위험 하다는 것이다. 그란-펄스에는 온갖 마물들이 득실 대는데 그들을 상대하기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닐 것이다. 긴 여행이 되겠군.
        좌우지간에 스노우를 데려갈 수는 없다. 이제 그의 임무는 세라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일이다. 라이트닝은 앞서 걸어가는 커플을 바라보았다.
        세라를 지키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여겼던 건 그다지 오래된 과거가 아니었다. 세라의 작은 손을 잡고서 이곳저곳 돌아다니던 날들이 떠올랐다. 이제는 그 책임을 물려줄 때가 온 것 같군. 아니, 이미 오래 전 이었는지도 모른다. 스노우가 이미 받은 것이다. 다만 그녀가 몰랐던 것 뿐.
        처음에 그저 말 뿐인 녀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는 새에 그의 말이 자신을 지탱해 주었고 포기할 지경에 이르렀을 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주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의 말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고 사람을 강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믿고 세라를 맡길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스노우 뿐이었다. 그들이라면 이 넗고 척박한 땅에서 살아나갈 수 있을 것이다.
        부디 행복해야 한다, 세라.
        라이트닝이 속삭이며 미소를 지었다. 이로써 책임 하나를 완수한 것인가. 기분은 좋았지만 웬지 슬프기도 하다. 그러나 편안함이 교차하는 슬픔이였다.
        삿츠는 아들 닷지를 가슴에 안고서 병사들과 함께 비공정 활주로로 걸어가고 있었다. 닷지가 라이트닝을 돌아보며 생기있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친절한 꼬마로군. 라이트닝이 답례로 손을 흔들자 그가 웃었다.
        이제 삿지는 닷지를 키우느라 바쁜 나날을 보낼 것이다. 그것이 삿즈의 책임이다. 부모를 대신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어릴 때 부모를 잃은 라이트닝은 잘 알고 있었다. 될 수 있는 한 둘이 오랫동안 행복해지기를 바랬다.
        그리고 삿츠는 조종사로서도 바쁜 생활을 보낼 것이다. 그란-펄스는 코쿤의 시민들이 상상했던 것 그 이상으로 광대한 지역이기에 비공정은 이곳 사람들의 생활의 중요한 일부가 될 것이다. 저들에게는 삿즈의 도움이 필요할 거야. 그는 이곳을 떠날 수 없다.

        호프도 마찬가지였다. 한 때는 알렉산더를 소환할 만큼 강력한 루시였지만 지금은 평범한 소년일 뿐이다.
        당분간은 혼란스러운 생활이겠지만 앞으로 늘 이렇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학교도 문을 열 것이고 그렇게 되면 호프는 학교를 다니면서 친구들과 어울리기도 하겠지. 그것이 그를 기다리는 삶이다.
        라이트닝은 세라를 지키기 위해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호프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어린시절을 충분히 즐기길 바랬다.
        어머니를 잃은 고통을 덜기 위해서라도
        그럼 결론이 났군, 라이트닝은 생각했다. 결국 구할 방법을 찾을 사람은 나 밖에 없어.
        사실, 세라를 구하고 난 후에도 그것이 끝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물론 처음에야 오로지 세라에 대한 생각 뿐이였지만.
        언제부터 생각이 바뀐걸까?
어쩌면 그란-펄스의 대지서 서서 코쿤을 바라본 때 였는지도 모른다. 난생 처음으로 바깥에서 그녀의 세계를 바라보았다. 여태껏 거대하다고 믿어왔던 세상이 고작 손바닥에 쥘 수 있을 정도로 작아 보였을 때.
        광활하게 펼쳐진 하늘에 비하면 코쿤은 너무도 작았다. 하지만 그 안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각자의 행복을 채우며.
        그녀는 그날 느꼈던 놀라움과 경이를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아마 그 때였을 것이다. 그녀 안에 무언가가 변화 된 것은.
        세라를 구하기 위해 모두와 함께 살아 남을 것이다. 동료가 되어버린 다른 루시들 뿐만 아니라 코쿤의 모든 사람들도 함께.
그녀는 모두와 함께 살아갈 날을 꿈꾸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아니, 코쿤의 사람들 뿐만이 아니다. 어쩌면 바닐라와 팡 같은 사람들도 그란-펄스의 어딘가에서 살아 남았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의 미래를 지키기를 소망했다.
        그것이 싸움이 아직 끝나지 않은 이유야....
        그녀는 서둘러 떠나야 한다는 걸 알았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냥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갑자기 뛰기 시작했다.
        왜? 무엇이 날 이렇게 떠밀고 있는거지? 이건.....이건 뭐지?


에피소드 1: 7장
물론 난 알고 있었어. 무슨 일이 벌어 졌는지... 하지만 내 눈으로 직접 보는 건… 혼란스러웠어. 난 길을 잃었어. 현실을 받아들이기엔… 하지만 현실이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어. 그냥 바라만 보는 것이 아니라 변화 시킬 수도 있다는 걸. 그때 힘과 용기가 생겼어.
세라는 고개를 들어 부서지고 산산조각이 난 코쿤을 바라 보았다. 그리고 코쿤을 지탱 하는 크리스탈도 바라 보았다.
        바닐라가 꿈 꾸고 있는 것은 어떤 꿈일까? 궁금해. 마치 내가 크리스탈 이었을 때 모두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 처럼…바닐라도 그런 걸까.
크리스탈로 변해버린 이 후의 기억은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브라샤 호수에서의 사건 이 후 그녀는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스노우가 그녀의 곁에 머물고 있었다. 무기력하게만 느껴졌던 그 때 스노우가 곁을 지켜 주었다. 어쩌면 그가 늘 크리스탈 눈물을 지니고 다녔기에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그가 본 것을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크리스탈로 변한 사람들은 각기 다른 꿈을 꾼다. 닷지는 수 많은 초코보들과 어울려 노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그 꿈은 어쩌면 새끼 초코보가 가져다 준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의 아버지가 만들어 준 것일지도 모른다. 이름이 뭐였더라. 삿즈였던가. 그토록 아들에게 멋진 꿈을 보여주고 싶어 했던 아버지였다.
어쩌면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스노우는 세라가 일행과 함께 해 주길 간절히 바랬었다. 그랬기에 그러한 꿈을 꾼 것인지도 모른다. 또 그녀 스스로도 조금은 간절히 바랬기에 어쩌면… 그러나 여전히 진실은 알 수 없는 노릇이였다.
꿈 속에서 곁에 머물러 준 스노우는 세라에게 용기를 주었고 지탱해 주었다. 만약 그 긴 시간을 차가운 외로움 속에 잠들었다면 깨어나기도 전에 그녀의 가슴은 산산조각 나 버렸을 지도 모른다.
세라는 바닐라가 멋진 꿈을 보기를 바랬다. 비록 함께 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모두의 마음이 모아지기를 바랬다.
“저기 말야, 조금 긴 여행이 될 것 같아. 우린 지금 떠난다.” 삿즈의 목소리에 번쩍 정신이 들었다. 어느새 닷지는 세라의 손을 잡으며 웃고 있었다.
“빠이빠이! 잘 있어!”
“잘 가 닷지. 곧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
크리스탈의 잠에서 깨어났을 때 처음으로 그녀를 반긴 것은 이 꼬마의 미소였다. 처음으로  귓가에 들려온 것은 이 꼬마의 천진난만한 목소리였다. 이 꼬마의 손을 잡고서 처음으로 그란-펄스의 대지에 발을 내딛었다. 현실 속으로 발을 내딛었다. 고마워… 세라는 속삭이며 미소를 지었다.
멀리서 병사가 서두르라고 외쳤다. “자, 이제 가야겠다.” 삿즈가 재촉하며 자릴 떠났다.
“가버렸네…” 곁에 서 있던 호프가 중얼거렸다. 그 때 또 다른 병사가 뛰어왔다.
“네 아버지를 찾았다. 보급 수송기에 탑승한 모양이다.”
“아버지를…?!”
“몇 분 내로 도착할 거다.”
바톨로뮤 에스트하임. 호프의 아버지가 루시의 아버지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기억하고 있었다. 아마도 사람들의 눈을 피하려고 스스로 보급 수송기에 몸을 실었던 것 같다.
“일단 착륙하면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만나도록 해 주겠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고마워 할 건 없지만 서둘러야 한다. 착륙시 혼잡한 틈을 타서 재빨리 탈출해야 하니까.”
병사가 재촉하자 호프는 함께 자릴 떠났다. 일행과 작별 인사를 나눌 틈도 없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눈빛으로 인사를 대신할 뿐이었다.
        “모두들 너무 빨리 떠나버리는군...” 스노우가 씁쓸한 듯 중얼거렸다. 언제나 외로움이 싫었던 그였다.
        “슬프긴 해도…이젠 모두 가족에게로 돌아갔잖아.”
        “그건 그렇지. 으쌰으쌰.”
비록 각자의 길을 떠나지만 한때 긴 여정을 함께 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어. 비록 몸은 떨어져 있지만 우린 어떻게든 늘 이어져 있을 거야. 마치 크리스탈 속에서 잠 들어 있는 바닐라와 팡 처럼.
        “하지만 이게 끝은 아니란 말이지.”
그렇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이젠 모두가 가까운 사람들의 손을 잡고 미래로 걸어가며 각자의 새로운 길을 헤쳐 나가야만 한다.
        그래. 나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거야.
        “저기 스노우... 생각해 봤는데… 나 선생님이 되어 보면 어떨까.”
        “학교 선생 말야?”
        “물론 아직까진 학교도 없고 집 조차 없지만… 아이들은 많잖아. 아이들에게는 학교와 교사들이 필요할 거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오랫동안 생각해 온 그녀였다. 잃어버린 낙원에 무언가를 만들어 줄 수만 있다면. 이것이 그녀가 내린 결론이였다.
        “아이들을 가르치려면 알려줄 수 있어야 해. 어째서 코쿤이 무너졌는지.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그들은 그저 파시의 가르침을 믿고 사는 삶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들은 인간의 운명을 고민 한다거나 눈속임에 불과했던 낙원에 대하여 단 한번도 의문을 부쳐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실수였다. 세라는 앞으로 그란-펄스에서 살아가게 될 아이들이 스스로의 인생을 고민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개척하길 바라고 있었다.
        “앞으로 십 년, 이십 년이 지나면 저 아이들은 모두 어른이 되겠지. 우리의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는 데 도움을 줄 거야. 처음에는 작은 도시에 불과하겠지만 저들이 돕는다면 점점 성장하게 될 거야.”
        “흠…너한테 어울리는 걸.” 스노우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래를 만들고 싶다는 거군.”
그녀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어른이 된다면 그 중 몇 명은 선생의 길을 택할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이 가르칠 다음 세대의 아이들이 어른이 된다면 그 중에서도 선생이 되어 가르칠 것이고… 그렇게 계속 미래로 나아가는 거다.
        “좋아! 그렇다면 난 거대한 학교 건물을 지어주지. 이~만큼 되는 걸로!” 스노우가 팔을 활짝 벌리며 말했다.
        “큰 학교와 집으로 가득한 도시가 곧 필요해지는 때가 오겠지…”
믿음이 이어진다면 꿈은 현실이 된다. 세라는 이 황량한 벌판에 거대한 도시가 펼쳐지는 꿈을 꾸었다. 그녀가 죽고 난 후 아주 멀고도 먼 미래에… 어쩌면 그란 펄스가 ‘낙원’이라고 불리우는 때가 올 지도 모른다. 거짓된 낙원이 아닌 인간의 손으로 직접 만든 낙원 말이다.
        “저기, 언니…” 그녀의 말에 동의해 주길 기대하며 세라가 말문을 열었다. 순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무언가가 그녀를 둘러싼 듯한 그동안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느낌이였다. 정신을 차린 순간 그 느낌은 온데간데 없었다.
        “언니?”
라이트닝이 보이지 않는다. 방금 전만 해도 옆에 있었는데… 순간 어떠한 예감이 들었다. 아니 불길한 느낌이었다.
        “뭐야?” 눈을 크게 뜨고 뒤를 돌아보았다.
        “난... ”
        그 어느 때 보다 크리스탈 기둥이 멀게만 느껴졌다. 저 곳으로 걸어간 게 틀림없어, 세라는 확신했다. 아까 이상한 느낌이 들었던 건 크리스탈의 잠에서 막 깨어난 탓인지도 몰라.
        “어디… 어디 있는 거야?” 세라의 목소리가 떨렸다. 혼란스러워 하며 손가락을 뺨에 가져다 대보았다.
눈물이었다…


에피소드 1: 8장
눈 앞에는 캄캄한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적어도 바다처럼 보였다. 넘실대는 검은색 파도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도 않았다. 소금의 냄새도 없었다. 마치 밤 중에 깊고 캄캄한 것이 물결치는 것 처럼 보였다. 라이트닝의 세계로부터의 바다가 아니였다.
바다 뿐만 아니였다. 이 곳은 한번도 경험 해 보지 못한 장소였다. 무언가 있는 게 분명해. 어쩌면 저 멀리 몬스터가 있는지도… 하지만 식물이나 짐승은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생명을 느낄 수 없는 곳이었다.
소리도 들리지 않고 색채도 없다. 이곳엔 단순히 고요와 어두움만이 존재 한다거나 그게 아니라면 그녀의 오감이 작동하지 않는다거나 둘 중 하나였다. 알 길이 없었다.
시간의 개념 조차 흐릿했다. 마치 수 개월 또는 수 년이 흘러가 버린 듯 한 느낌이였다. 동시에 모든 것이 순간 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그래서인 건가...
천천히… 그녀는 차분히 그 곳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고 있었다. 이 곳은 내가 싸울 수 있는 곳이 아냐.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이면서도 모든 것이 존재하는 세계. 인간의 언어로 표현 하자면 그야말로 無와 혼돈의 세계였다.
그래도 앞으로 걸어 보았다. 찾아야 하는 것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디로… 난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오로지 정적만이…순간과 영원과도 같이 그녀의 목소리를 삼킬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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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damilove

2011.01.20 06:15:36

결국 상대는 신이 되는 건가?
흥미롭게 잘 읽었어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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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4]jms489

2011.01.20 12:01:17

스토리를 몰라서 읽어도 읽는게 아니야 ㅠㅠ ㅈㅅㅈㅅ

[레벨:0]꿈★은 이루어진다

2011.02.02 07:18:19

잘 읽었습니다. ^^

[레벨:0]그날이후,

2011.03.09 01:21:05

13-2 프롤로그라고 해서 찾아봤더니 이런 내용이였군요

번역 수고하셨고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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